원래 주문은 카운터에서 받지만 주방이 개방되어있는 한 바에서 주문을 받지 못할 것도 없었다. 사장의 물음에 잠시 당황한 루피가 급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사장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는데 충분히 험악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루피는 말간 표정으로 자신의 말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피력했다. 자신이 뱉은 말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시퍼렇게 어린 것이 반말이나 찍찍해대고 말이다. 사장은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메뉴판을 가리켰다.
“어떤 커피로?”
저쪽에서 반말을 쓴다면 자신도 굳이 예의를 차릴 생각이 없었다. 간단하게 튀어나간 말에 루피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메뉴판을 쳐다보았다. 그에게는 어렵기 그지없는 커피의 이름들이 즐비했다. 대체 뭐가 뭔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커피이고 차인 건지 구분할 수조차 없었다. 오만상을 찌푸린 채 메뉴판과 눈싸움을 하고 있는 루피를 오묘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사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추천해줄까?”
“오, 좋아! 난 쓴 거 아니면 다 잘 먹어!”
“쓴 게 싫다면서 저번에는 왜 아메리카노를 먹었냐?”
“어, 내가 아메리카노 먹은 거 어떻게 알지?”
“어쩌다보니. 작은 가게라 드나드는 손님이 거기서 거기거든.”
거기서 거기 일리가 있나, 사업이 이렇게 번창했는데.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지만 그래도 원래 싫다는 거 먹은 사람을 잊지 않을 정도의 기억력은 있었다. 자신의 커피가 그만큼 그에게 영향력이 있었다는 의미니까. 그것만큼 인상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바리스타에게 있어선 말이다.
“그건 나미가 억지로 쥐어줘서 어쩔 수 없이... 공짜로 먹는 건 불평하면 안 돼.”
“그래도 다 먹었잖아.”
“헉, 그건 또 어떻게 알았지?! 시럽 넣었더니 먹을 만했어!”
세상에 이렇게 신기한 일은 또 없을 거라는 듯, 놀라는 표정이 격정적이었다. 사장은 그러냐고 대꾸하며 커피머신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뭔가를 만들어줄 생각인가보다. 루피는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사장이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열렬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장은 능숙하게 커피를 내려 휘핑크림을 잔뜩 올려주었다.
“쓴 게 싫으면 커피가 아닌 다른 걸 먹을 만도 한데.”
“여기 커피는 신기해서! 이건 뭐야?”
“캬라멜마끼야토. 개중에서는 제일 단 편이지.”
“맛있겠다, 생크림~!”
뭐가 그렇게 신기한 걸까. 다른 곳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는 평범한 커피인데. 사장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루피에게 완성된 음료를 내밀었다. 그는 일단 휘핑으로 올라간 크림을 입가에 잔뜩 묻혀가며 맛있게 먹어치웠다. 마침 손님도 별로 없었고 사장은 주방에 기대선 채 그의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음료를 마신 루피의 눈이 동그래진다.
“이게 진짜 커피야? 완전 달다!”
“입맛에 맞냐?”
“응! 완전 맛있어! 아 그리고 계산은 이걸로 해줘!”
입맛에 맞다니 그것 참 다행이군요. 사장은 루피가 건넨 카드를 받아들어 카운터로 향했다. 다행히 먹고 튈 생각은 아니었나보다. 카드를 돌려주니 바 위에 그대로 올려놓고선 음료에 푹 빠져있다. 보아하니 커피를 먹어본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게 신기한가? 사장은 숫제 턱까지 받힌 채 루피를 빤히 구경했다. 루피는 그 시선이 느껴지지도 않는지 커피를 마시느라 정신이 없었다. 곧이어 다른 손님이 들어와 사장은 몸을 일으키곤 카운터로 향했다.
그 사이 루피는 단숨에 음료를 들이마셨다. 거의 흡입하는 수준이었다. 한참 손님들을 상대하고 돌아봤을 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잘 먹었습니다!”
“잘 가라.”
당차게 인사를 한 그는 망설임 없이 가게를 빠져나갔다. 여러모로 해맑은 사람이네. 밝은 기운이 물씬 풍기는 사람이었다.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사람. 자주 왔으면 좋겠네, 아니면 말고. 그렇게 가벼운 감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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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조로.”
“없으니까 이거 먹고 가라.”
“왜 손님을 쫓아내고 그래?”
“니가 손님이냐? 식충이지.”
“너무해-!”
조로는 루피가 자리에 앉아 입을 열자마자 우유를 한 잔 내주고는 축객령을 내렸다. 루피가 대번에 입을 비죽였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제는 아주 학교가 끝나고도 와서 카페에 내내 죽을 치고 있다. 물론 카페에 있는 동안 계속 무언가를 먹어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슬슬 지겨울 지경이었다. 왜 이렇게 자주 오는지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저 고집부리는 표정에 두근거리는 자신의 가슴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그냥 별난 사람이라서 노력하지 않아도 눈에 띄었을 뿐인데. 솔직히 저 나이에 저렇게 근심 없는 얼굴로 해맑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냔 말이다. 순수하게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만을 담아내는 얼굴을 보는 건 거의 처음이었다. 처음 접하는 생소한 것에게 시선이 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고, 그렇게 자신의 눈은 언제나 그에게 닿아있게 되었다.
“하지만 조로가 만들어준 거 맛있단 말이야.”
“...그것만 먹고 가라.”
“왜! 나 오늘은 딸기 스무디 먹을 거야!”
“웬일로 커피가 아니네?”
“오늘은 왠지 딸기 기분이야! 빨리 카드 가져가.”
“그래, 너 돈 많아서 좋겠다...”
이게 문제란 말이다. 직선적으로 쏟아져오는 칭찬. 거짓 하나 없는 순수한 칭찬에 대꾸가 바로 나오지 않았다. 뒤늦게 돌아가라는 말을 꿋꿋하게 밀고 나가 봤지만 루피는 막무가내였다. 애를 너무 오냐오냐 키운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조로는 루피의 카드를 가지고 갔다.
루피는 먹는 속도가 빠른 편이었고 카페에 있는 시간은 긴 편이었다. 그만큼 카페에 한 번 오면 음료를 세 개는 기본으로 먹고는 했는데 아무리 싸다고 해도 매일매일 그 돈을 지출하기엔 무리가 따를 것이 분명했다. 루피는 저래 뵈도 대학생이니까. 하지만 그는 일개 대학생이 아니라 대단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대학생이었다. 그러니까 돈을 이렇게 펑펑 쓰지. 조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딸기 스무디를 만들었다.
“조로, 나 뭐 좀 물어봐도 돼?”
“뭔데.”
돌아가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착실하게 되물어준다니까. 루피는 두 손으로 턱을 받힌 채 시싯, 소리 내어 웃었다.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생각하면 막 가슴이 간질간질거리고 자꾸 그 사람이 생각나고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오고 음, 음 그리고 또...”